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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공직생활을 뒤로한 창업 인사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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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innok 연락처 :
댓글 0건 조회 1,521회 작성일 20-04-0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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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여러분~~

 

저는 그동안 23년간 복지부와 식약처에서 남다른 약무행정을 해 온 김인옥입니다.

97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래는 기술직공무원의 시대라시며 아버지의 강한 권유에 못이겨 영어시험보고 선배도 없었던 미지의 공직생활을 복지부에서 참사관부터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지만 그땐 70만원 월급 받고 야근 수당도 안 받고 숱한 날을 보내던 시절, 업무가 재미있어 힘든 줄 몰랐습니다

신입사원으로 신약개발과에서 GLP 등 신약개발지원,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 위촉 및 운영을, 약무정책과에서 약사법령 개정, 규제완화, 유권해석업무와, 마약관리과에서 마약류안전관리(의료용 마약류 배정, 인허가, 사후관리, 불법마약류 퇴치 홍보, 마약류치료보호 및 INCB 국제마약류관리위원회에 의한 배정관리) 등 비정규직 40개월이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생기가 넘치고 희망적이었던 거 같습니다. 지금은 한약사가 약무직으로 들어와 그 수가 많지만 그땐 약무직이 워낙 작아 저희 분야는 소신 있게 처리할 수가 있었고, 오히려 고시 출신 과장님과도 약사법령 유권해석 민원 처리는 서로 의견교환을 하며 Legal mind를 자연스럽게 습득했는데, 식약처 지방청(서울경인, 대전, 광주청에서 발령받아 현장에서 약사감시라는 영역의 일을 할 때에는 상부의 부당 지시에도 굴하지 않고 국민보건향상을 위해서 끝까지 확인서를 쓰는 초년생 약사감시원의 소신을 떨쳤으며, 이는 조직 내 악명이 높아 인사이동할 때마다 오해를 받곤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국약사법의 목적 내에서 업계의 현실을 넓게 보고 듣고 법과 현실간의 간극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여러분과 열린 소통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사실 저는 워낙 젊은 나이에 입사해 당연 과장은 간다는 생각에서 아무리 큰 유혹이 와도 전문직으로서 편한 길을 놔두고 택한 공직으 길이었기에 명예를 지키려고 남다른 노력을 했습니다. 입사할 때부터 거침없는 추진력과 언행으로 눈에 띤다는 평판이 따라다녀 나름 직장생활은 쉽지 않았으나, 사실 돌아보면 청차장, 국장, 과장 이외에도 주사나 참사(비정규직) 등 백의종군하셨던 선배님들의 한땀 한땀 열정이 모여 지금의 식약처가 있다고 생각해왔기에 위로로 삼고 이제껏 열심히 일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가 하는 약무행정에 산업계 여러 훌륭하신 분들이 함께 참여해주시고 수고해주셔서 이뤄낸 모두의 성과였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작년 하반기 바이오의약품정책과에 복귀해 2020 글로벌바이오콘퍼런스(GBC) 기획이나 다이나믹바이오 행사 이외 협회와 바이오IT플랫폼 등 용역사업을 하면서 바쁜 중에 조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가원를 하부기관으로 치부하면서 자료취합만 하고 업계 소통은 협회를 통해서만 하는 소모적인 조직, 그 위기질서는 더 엄격해져 소통보다는 지시를 받아 처리하는 경직된 조직... 통합 10년 넘게 GMP 조사관 생활을 하면서 현장 소통했던 과거와 달리 처가 되면서 원과의 힘겨루기에 소모전을 하면서 피로감을 느꼈고 스스로 위축되는 걸 느꼈습니다. 제가 그리웠던 시절은 과거 생물의약품본부시절  행정부서와 지금의 심사부서가 열린 마음으로 SWOT 분석 등 생각을 모아 국검 간소화 방안을 모색하고 작은 소리도 크게 들어 생물의약품 검사에 소요되는 품질검사기관지정 가이드라인이나 일본 PMDA, 후생성을 직접 방문하여 고위험군 체외진단제제 GMP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등 함께 문제해결을 위해 신바람 나게 일하던 공직생활이었습니다.

한 달에 두 번씩 해외 출장을 다녀야만했던 저의 의약품품질과 시절, 밸리데이션 개념을 모르는 제약계를 직접 방문해 작성요령과 양식을 토대로 현장 교육하여 새GMP를 도입했던 그때는, 전 낮엔 밸리데이션 도입을 위한 민원 전화로, 밤엔 실사결과보고서 작성에 새벽에 퇴근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터키에 일반약을 수입하고 싶은데 PIC/S 가입 추진을 해줄 수 없냐는 모회사의 방문에, 저도 매번 해외실사에서 KGMP 수준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하는 것이 불편했던 터라 우리 GMP 수준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게 우리제약 해외진출과 식약처의 위상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해 제 업무이외에 추가로 흔쾌히 받아줬고 식약처 어느 간부도 PIC/S 가 뭔지도 모르는 시절 PIC/S 사무국에 메일 보내고 민관협력체를 구성해서 정보 수집하고 연구용역해서 PIC/S 가입 추진(PIC/S 규정과 새GMP규정과의 차이 및 도입의 장단점 비교 등)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고 즐겁게 호주를 다녀올 수 있었는데 돌아와보니 당초 규제조화를 통해 PIC/S 가입을 하기로 했던 계획과 달리 GMP 규정을 PIC/S 규정으로 모두 개정해서 업계를 불편하게 한 걸 보고 사실 놀랬습니다.

2012년 허가심사조정과에 근무할 때에는 우리 의약품인허가심사 수준을 20년 앞당길 수 있는 CDISC표준 eCTD(MedDRA용어 도입)시스템 개발사업 PM(프로젝트 메니저)를 맡게 되어 반 전산업무 속에 파묻혀있었는데 미 FDA와 달리 SAS 도입을 채택하기보다 국내 개발을 요청해서 듣도보지도 못한 프로그램 개발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제 항공마일리지를 써서 미국으로 날아갔습니다. FDA 관련부서와 오픈 CDISC 개발자, CDISC 본사 부사장과 MedDRA 도입을 저렴하게 하기위해 KMSSO(한국내 MedDRA 유지관리사무소) 에 대한 타협을 하기위해 ICH와 면담을 하는 등 및 전자정부사업의 세계와 국제협력으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식약처 일은 그랬습니다. 힘들다고 하지만 보람도 있고, 조직에서 기 죽지 않고 자기 자리의 무게를 정확히 알고 하면 무슨 일이든 못할 게 없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변화된 조직 속에 소신을 펼치는 데 스스로 힘에 벅차다는 게 느껴질 만큼 스마트함을 자처하는 젊은 후배님들에게 맡길 일이지, 전 그동안 쌓아올린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을 비롯하여 협업을 통한 나의 기업을 세우는 데 보람을 찾고 건강을 해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명예퇴직을 선택했습니다.

지인들은 잘 아는 애기인데 전 꼼꼼하긴 하지만 결심과 동시에 실행에 옮기는 행동파입니다

식약처 업무를 하면서 업계의 참 좋은 분들과 파트너로 일했고 일에 바빠 사적인 우정을 나누진 못했지만 이젠 저를 식약처 사람이 아닌 비즈니스 관계로 다시 만나 뵙길 청합니다.

제 아버지의 공무원 생활 33년의 새마을 정신(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공부하는 게 벼슬이냐’, ‘호랑이는 풀잎을 먹지 않는다’ )에 부끄럽지 않게 복지부와 식약처에서의 제 공직 경험을 토대로 식의약 전문 컨설팅 에이전시업무가 제 기업의 시발이 되었습니다

 

주로 제 분야는 의료제품(의약품, 화장품, 의료기기, 의약외품) 수출입, 국내외 시장조사를 통한 Repositioning, GMP(PQ) 컨설팅(공급업자 평가 포함) 등 해외 제조사를 실사를 하는 에이전시가 될 것이고, 회사가 잘 자리잡으면 2~3환경 분야의 NGO활동을 하고 은퇴해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를 하며 여유로생활을 하고, 그땐 대부분 은퇴하실 여러분과 함께 ODA 등 국제협력업무도 하고 편안한 실버산업으로 선후배간 우정도 나누고 나라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이제껏 현장실사와 민원 경험이 시장경쟁에서 유료 서비스로 자리잡는다는 게 쉽진 않겠지만 제 경험과 지식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건강도 회복해 예전처럼 활발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의 앞날에도 행운이 있으시길 바라며. 새로운 시작에 응원해주십시오

함께 일해서 행복했고 참 감사했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20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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